
과거 19세기 후반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를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들의 먹잇감은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 태평양의 섬들이었다.
당시 영국이 식민지 경쟁에서 제일 앞섰으며 전 세계에 가장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다.
그다음은 프랑스로 인도차이나 반도 아프리카 북서부 지역에 식민지를 차지했다.
독일도 뒤늦게 해외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남북전쟁 후 미국과 메이지 유신 후 일본도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했다.
1869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개통으로 인도나 아시아로 가는 길이 더욱 빨라졌다.

벨기에 국왕의 의뢰로 미국의 신문기자 헨리 모턴 스탠리는 1877~1884년 아프리카 콩고강 연안을 탐험하였다.
벨기에 국왕이 콩고협회를 설치하며 콩고 지역을 통치하고 그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 열강은 앞 다투어 아프리카 식민지 건설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시작한다.

그리고 유럽 열강들은 서로 간의 분쟁을 막으려고 1884년의 베를린 회의에서 콩고는 레오폴드 2세의 지배를 받는 자유국이 되었고 콩고의 항구는 개방되어 열강들의 자유로운 먹잇감이 되었다.
당시 아프리카 수에즈 운하를 영국이 차지하려 하자 프랑스는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결국 영국은 마지못해 수에즈 운하를 국제적 운하로 인정하였다. 그 외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아프리카 영토를 차지하려고 경쟁하였다.
영국은 결국 1899년 네덜란드의 후손 보어인이 세운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군을 점령하며 1910년 케이프타운 등 을 묶어 남아프리카 연방을 만든다. 그리고 아프리카 북부 이집트 카이로에서 남부 케이프타운까지 지역을 연결한 식민지를 개척하는 종단 정책을 펼쳤다.

프랑스는 알제리, 튀니지에서 동쪽 마다가스카르 섬까지 동서를 가로지르는 횡단 정책을 펼쳤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1898년 수단의 파쇼다에서 서로 군대를 대치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독일의 세력을 막기 위해서 영국에 협조해야 된다고 판단해 파쇼다에서 프랑스의 군대는 철수시킨다. 대신 프랑스가 독일과 모로코를 두고 충돌했을 때 영국의 지지로 모로코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다른 열강과 다르게 당시 독일은 유럽의 세력 확장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비스마르크의 태도를 변화시킨 건 사업가와 민족주의자들이었다.
뒤늦게 아프리카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독일은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에 관심을 가질 때 남서 아프리카와 카메룬, 토고를 보호령으로 만들고 탄자니아를 차지해 본국 영토의 5배에 달하는 지역을 차지했다.

이렇게 유럽의 열강들은 아프리카 대륙으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유럽 열강들은 아시아와 태평양까지 영토를 확장하려 하였는데 이미 포르투갈은 먼저 아시아의 향료 무역을 독점하고 있었다.
이후 영국이 가장 활발하게 아시아에 진출하였다. 영국은 1877년 수립한 인도제국이 아시아 진출에 중심지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러시아도 부동항을 얻기 위해 따뜻한 남쪽나라를 차지하려 남하 정책을 추진해 투르키스탄, 페르시아(이란), 아프가니스탄을 향하려 했다. 그러나 인도를 지키기 위한 페르시아만에 있는 영국으로 인해 러시아의 진출의 방향은 극동 방면으로 바꾼다.

프랑스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라오스를 차지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을 건설한다.
러시아와 일본, 미국이 중국을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1904년 러일 전쟁을 일본이 승리한다.

18세기 후반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 건설 후 19세기 중엽 금광 발견으로 적극적으로 개발해 1901년 영국령이 되고 1907년에 뉴질랜드도 영국령이 되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미국, 독일 열강들에 의해 남태평양 지역은 치열한 격전지가 되었고 타협을 통해 독일, 네덜란드, 영국은 뉴기니를 영국과 프랑스는 뉴헤브리디스를 통치했다.
미국은 1898년 에스파냐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에스파냐가 점령한 필리핀을 빼앗는 등 여러 나라는 식민지 경쟁으로 태평양 여러 제도를 나누어 갖는다.

힘들게 차지한 식민지에서 토지를 빼앗고 식민지인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켰다.
열강들은 최대한 이득을 얻으려고 원주민들에게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을 것을 주고 강제로 일을 시켰다.

또한 식민지에서의 상품 판매 독점권을 얻고 식민지에 경쟁상품을 만들지 못하게 원료 생산마저 통제하므로 식민지의 경제는 본국의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프랑스는 차지한 식민지는 광대한 영토에 비해 프랑스 상품을 사기에는 너무 가난해 큰 이익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프랑스는 식민지에 산업발전보다는 농업과 자원 확보에 힘을 기울였다.
영국은 부족한 식량과 필요한 원료를 마음껏 가져다 쓰고 인구가 많은 인도에 상품을 팔아 많은 이익을 얻었다.

열강들은 자신들 마음대로 식민지 경계를 나누고 경계에 따라 원주민을 나누어 분리시키고 건설한 도시, 광산 등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또한 자신들 마음대로 지배하기 위한 법을 만들어 정한 법률에 따라 식민지인들을 마구 체포하거나 감옥에 가두고 처벌했다.
열강들은 쉽게 통치하려고 교육을 이용해 본국의 이념과 가치관과 언어를 가르쳤으며 고등교육은 받지 못하게 했다.

식민지인들의 노동력을 지키기 위해 병원과 무료 진료소, 의학 연구소를 세워 식민지 인구를 증가시켰다.
열강에 의한 식민지의 생활의 향상은 결국 식민지 지배를 쉽게 하기 위한 것으로 식민지였던 국가의 근대적 발전은 열강의 노력이 아니라 해방 후 식민지였던 국민들의 노력한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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